FRITZ MÖBUS

1924
프리츠 뫼부스(Fritz Möbus)는 유럽에서 스타급 단거리 선수로 활약했던 육상 선수였습니다. 제화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수 차례 대회 우승을 통해 유명세를 누렸지만, 1924년 크라일스하임(Crailsheim)에 제화공장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는 최고의 운동선수들을 위한 선수 전용 신발 제조업자로 명성을 얻으며 제화 업계의 챔피온으로 거듭 났습니다.

Fritz Möbus, der Läufer.

Olympia Berlin 1936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간 동안 뫼부스의 스포츠용 신발을 착화하는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Frieda Möbus
FRIEDA MÖBUS

1945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국가 재건 작업이 시작되던 해. 뫼부스는 안타깝게도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프리츠의 부인인 프리다(Frieda)는 용기있게 가업을 계승합니다. – 중간

Möbus Verkaufssfläche 50er Jahre

생략- 그러던 중 기적과도 같은 경제적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복싱용 부츠, 축구화 또는 펜싱, 테니스, 등반, 스키, 발레 및 체조 등 다양한 스포츠 전용 신발. 뫼부스는 이 모든 스포츠 전용화를 제조하면서 유럽 최고의 제화업체로 성장한 것입니다.

50er Jahre Werbung – Mit Möbus siegt man leichter

50er Jahre Werbung – Schuhe für den Sport

1950
1950년대 뫼부스는 혁신적인 '와이드 스트립 슈즈'를 개발, 생산하게 됩니다. 이 슈즈는 1960년대 말까지 이 기업의 효자 역활을 톡톡히 했으며, 그 동안 뫼부스의 앞글자를 딴 "M"은 독특한 브랜드 로고로 자리매김을 해나갔습니다.

Fußballbundesliga 1963
1963년, 독일의 분데스리가 발족 골을 넣은 수 많은 축구 스타들의 발에는 뫼부스 신발이 착화되었습니다.

1970
1970년대 크라일스하임에 위치한 뫼부스 공장은 뫼부스 슈즈뿐만 아니라 "오니츄카 타이거스"와 "아식스"도 전격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1982
1982년 프리츠와 프리다 뫼부스의 딸인 일제(Ilse)는 크라일스하임의 사업을 물려받아 체조와 예술 체조 전용 슈즈에 주력하였고, 그 결과 업계 최고가 되는 쾌거를 다시 한번 올렸습니다. – 중간

Fußballmannschaft in Möbus-Trikots

1990
.생략 -. 1990년대에 접어든 뫼부스. 일제의 아들인 디터 바알(Dieter Wahl)은 작업장과 가죽 보관창고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재봉사와 신발 제조사들과 놀면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는 현재 제화 제조 기술을 진지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2004
뫼부스의 창립 80년을 기념하여 베를린의 패션박람회인 "Bread & Butter"에 모인 전 임직원들은 금색 로고 장식의 뫼부스 신발을 착용하고 참석하여 눈낄을 끌었습니다.

…오늘날 디터 바알은 창립자인 조부 프리츠 뫼부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업을 물려 받아 성공적인 운영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디터는 사업 파트너인 마르코 오펜호이져(Marco Offenhäuser)와 요헨 슈미트(Jochen Schmidt), 그리고 패션 디자이너인 존 리브(John Ribbe)는 서로 힘을 모아 크라일스하임에서 탄생된 전통 브랜드를 컬트 수준의 혁신적인 브랜드로 재탄생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